‘오사카’에선 도시 속의 호텔에서 묵다가 교토에 오니, 대구에서 경주에 온듯이, 교토는 사원의 도시요, 역사의 도시, 문화유산의 도시, 목조 건물의 도시로서, 건물의 증축이나 개축은 문화유산을 파괴한다고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도시의 높이가 낮으며 우중충한 도시요, 이끼냄새가 풍기는 고도(古都)다.
한국에선 강원도의 건봉사(乾鳳寺)나 서울의 승가사(僧伽寺)와 같이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있고, 승려들도 속인(俗人)과는 인연을 끊고, 구도(求道)와 인격(人格) 수양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일본에선 사찰이 주택가에 있으며, 승려들도 일반인과 같이 승직(僧職)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기지며, 비구승 (比丘僧)과 비구니(比丘尼)의 구분은 없고, 종교라는 냄새는 없이 직업 경쟁 속에 휘말린 사찰의 종사하는 승려다.교토 역에서 파크호텔에 도착한 것은 정오로 교토 지사를 방문 하도록 약속된 시간은 오후 4시다.
한국을 출발할 때 가키자키 소장으로부터 교토 지사는 타워 빌딩 속에 있다고 몇 번이나 들었는데, 막상 찾으려니 더듬는다.
교토 지사는 역전 도로 건너 타워빌딩 1층에 있으며, 국제관광진흥회 교토 지사라는 간판을 겨우 찾았다.
카운터 여직원에게 명함을 보이고 방문 목적을 말하니 곧 소장실로 안내한다.
소장은 ‘오카타히로시’ 상으로 명함을 교환하고 방문 목적을 말하니, 상호의 방문을 환영한다.
소장과 현지에서 지사의 운영과, 서울사무소의 운영방침, 본사의 운영 방침을 듣고 자리를 뜬다.
교토하면 해방 당시에는 “경도 양단”으로 유명했는데, 현지에 와서 보니 그 유명하던 경도 양단의 흔적은 어디를 가도 찾을 수가 없다.
상호가 해방이 되면서 장에서 포목 장사로 양단을 취급할 때는 교토는 종교의 도시보다는 대구와 같이 섬유의 도시로 알아서,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교토는 사원이 유명하다고 들어서 상호는 호텔에서 가까운 천불상이 있는 “산주상켄도(三十三間堂)”의 부처를 보고, 산주 상겐토에서 가까운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향한다. “기요미즈데라”의 큰 사찰은 못 하나 박지 않고 나무로만 조립 했으 나, 물 한 방울 새는 곳이 없이 사찰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니, 옛날 사찰을 지은 건축가의 기술이 뛰어나다.
기요미즈테라의 참관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일본 사람의 장례행사를 보았는데, 도자기 공장의 사장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조문객은 까만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매고 슬픈 표정으로 한국 풍습과 같이 조의봉투를 내는데, 봉투 한가운데 까만 리본을 둘렀고, 접수하는 사람이 앉아서 봉투를 받는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양편에 기념품가게와 과자가게가 즐비하다.
과자가게 여자 종업원은 쟁반에 알사탕을 받쳐 들고 손님 끌기에 혈안이다.
언덕을 내려오는 골목길에서 다방에 들렸더니, 다방은 10평 안팎의 공간에 인조 공원을 꾸며 놓았다.
공원은 산천의 대자연을 앞마당에 옮겨놓고, 축소된 인조 공원 에는 조그마한 소나무도 있고, 물도 흐르며 다리도 있다.
일본 사람 은 축소된 인조 공원 옆에 앉아서, 차도 마시며 친구와 담소 (談笑) 도 한다.
다방에서 나와 길 양쪽에 늘어선 골동품 가게를 보고 서울의 인사동 골목을 연상하며 걷는 데, 진열된 도자기는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라고 하는데, 상호에겐 조잡하게 보이며 갖고 싶은 마음이 울어나지 않는다.
교토는 천년 전에 조성된 고도로서 평탄한 거리를 일조(一條), 이조(二條), 삼조(三條) 등으로 기획한 계획도시다.
오조(五條) 거리를 걷는데, 어린이가 칼싸움을 하는 모습을 돌로 조각해 놓았다.
옆에 세워진 설명문엔, 일본에서 유명한 옛날의 무사(武士)들이 칼싸움 하는 모습으로, 벤케이(弁慶?-1189)가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1000개의 칼을 뺏기로 결심하고, 다리 위에서 자기보다 힘이 센 ‘우시와카마루(1156-1189)’를 만나, 마지막 한 개를 뺏으려다 싸움에서 패하고, 그의 신하가 되어 1189년 싸움터에서 군주와 같이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고사(古事)를 재현하여 놓았다.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알고 싶으면 ‘기옹코너’에서 공연하는 공연물을 보라고 하기에 ‘기옹코너’를 찾기로 한다. ‘기옹코너’에서 일본 전통의 다도와 연극, 거문고와 무용을 공연하는 일본 문화를 감상하는 데, 서울의 필동 ‘한국의 집’에서 공연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보는 기분이다.
‘기옹코노에서’에서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데, 일본 전통의 ‘기모노’를 입고 인력거에서 내리는 잚은 기생(妓生)을 본다.
모자(母子) 관계를 맺고 있는 젊은 게이샤(妓生)는 늙은 게이샤와 무엇이라 말을 주고받는 데, 그들만이 통하는 변으로 말하니 제 3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인력거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택시가 드물어 , 부호의 교통수단과 기생들의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 타고 다니던 손수레로, 한국에선 오래 전에 사라진 교통수단인 데, 교토에선 문화의 도시, 예술의 독시라 그런지 인력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대부분의 게이샤가 중학교를 나온 어린 여성이며, 게이샤를 하다 가 돈을 벌면 다시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게이샤가 23명뿐이라고 신문에서 읽었는 데, 지금 인력거에서 내리는 저 게이샤도 23명 중의 한 명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외국 관광객은 운이 좋아야 ‘기모노’를 입은 일본 게이샤를 볼 수가 있다고 하는 데, 목둘레까지 하얗게 화장을 한 얼굴과, 굽 높은 일본 나막신을 신은 모습은 일본 전통의 처녀 게이샤다. ‘기옹 코너’에서 나와 교토 명물인 ‘교토 타워’를 찾는다. 9층으로 된 ‘교토타워’는 지상 100m라고 하는데, 엘리베이터로 9층 전망대까지 올라가 비치된 망원경으로 시내의 야경(夜景)을 본다. 망원경에 비치는 시내 야경은 전기 불만 반짝일 뿐 확실한 건물이나 지명은 짐작으로 알 뿐이지만 교토의 야경은 아름답다.
도보로 8층으로 내려오니, 시대별로 서민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모습을 밀랍으로 재현시켜 놓았는 데, 전통적인 ‘무사의 집’은 한국의 양반집과 비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