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金在圭)이 대통령(朴正熙)을 시해(弑害)하고 사형에 처해지니, 보안사령관 (全斗煥 陸軍少將)이 국가보위위원장을 거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비서실에 권력기관이 많다는 이유로 1980년 2월 하순에, 각 기관에서 파견된 전담반이 해체되고, 상호가 소속한 관광개선전담반 직원도 관광공사로 철수한다.
대통령은 사회비리를 척결한다고 보안사령부 장병을 풀어서, 사회 구조를 개편하려던 사람의 뒤를 밝게 한다.
일요일 오후다. 상호가 집에 있는데 초인종이 “따르릉” 울린다.
대문을 열고 내다보니, 낯선 신사 한 분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서있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라 정중하게 맞이하는 데, 뒤따라 현관으로 들어선 신사가 자기는 서울 지역의 경제 감독관 팀장 “김상하”라고 소개한다.
처음 보는 신사라 의아하게 바라보며 방문목적을 물으니, 낮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 좌석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이 융통 없는 상호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한참을 듣다가 듣기가 좋아서 상호를 찾아왔노라고 한다.
상호가 이야기를 들으니 대수롭지 않은 얘기지만, 상호 아내가 진지하게 듣는 것을 보면서 서울지역 경제 감독관 팀장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융통 없는 상호 체면을 세워준 다고 생각하며, 의아하던 생각은 흐뭇한 감정으로 바뀐다.
청와대로부터 철수한 전담반 요원은 전에 일보던 자리로 가는데, 상호는 군에서 파견되어 청와대에서 제대를 했으니 돌아갈 곳이 없 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니 의욕적으로 정사를 살피는 데, 업무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과 50이 넘은 늙은이는 모두 숙청한다.
대통령 명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했으니, 상호는 숙청대상 제1호다.
후임자에게 인계하려고 서류를 작성하니, 옆에서 보던 직원이 “시어머니 마음에 거슬려 집나갈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서 보리방아를 찍고 있다”라고 비꼬며 상호의 어리석음을 나무란다. 먼저 숙청당한 사람이 상호가 보직 없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상호 나이가 50이라고 치안국에 투서를 한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육군에서 소장으로 예편하고, 전라북도 지사와 교통부 장관을 역임한 황인성(黃仁成) 장군이 사장으로 부임한다.
봄 정기 인사에서 해외진흥부 아주과장을 보직하려는 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주과장은 외국인을 상대하는 자리라 일어와 영어의 구사가 필수적이다.
총무부장이 사장실로 불려가고, 아주과장 후보로 상호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총무부장은, “김상호는 군인 출신이라 융통이 없고, 관광 업무엔 문외한이라 자신 있게 추천은 못 합니다”라고 부정적으로 건의하자, 군인 출신으로 장군까지 진급한 사장은 “군에서 중령까지 진급했으니, 지기 직책은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일단 보직을 주어 일을 시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남들은 요직이라고 탐내는 자리를, 상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리에 앉는다.
규정에 따라 자리를 지키며 외국인을 접견하고, 한국의 관광정책을 설명하며 관광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황 사장이 국회로 진출하고, 국회의원 출신인 하대돈(河大敦)이 사장으로 부임한다. 1981년 9월의 정기 인사에서 기대했던 부장으로 승진이 안 되자 상호는 무심코 불평을 했더니, 불평을 전해들은 총무과에서 9월 25일부로 충무로의 본사에서 강남구에 있는 관광훈련원으로 정근 명령을 낸다.
상호가 관광 훈련원에서 10개월간 일어와 관광개론을 강의하고 있는데, 1982년 7월 1일부로 상호를 관관훈련원에서 전에 근무하던 해외진흥부 아주과장으로 전근명령을 낸다.
아주과장이던 유동수(兪東秀)가 일본 도쿄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고, 상호가 후임 아주과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주관장은 상호가 전에 근무하던 데라 일하는 덴 낯설지 않았다.
아주 과장이 하는 일은 아시아 지역에 나가있는 현지지사의 통제와 업무지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국에 관한 관광정책과 관광지를 홍보하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지리상으로 가까운 일본 관광객이 50%를 넘으며, 공장의 사장이나 기업주, 정치가들은 홍보수단으로 한국관광지 방문을 선호하고, 상호는 한국을 대표해서 외국인 관광단체를 상대로 한국 관광정택과 광관지를 홍보한다.
국부(國富)는 시장의 다변화와 국력의 신장, 수교국의 증가와 상품의 수출과 수입, 외환(外換)의 보유고에 따라 그 나라의 빈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면, 관광은 국민 활동의 범위와 활력의 재충전, 문화발전과 지식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상호간에 국교가 없더라도 정경분리로 무역거래가 이루어지고, 무역거래가 이루어지면 국민의 생활향상과 지식의 보충을 위한 관광이 뒤따르며, 무역과 관광이 뒤따르면 국교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관광은 외화가득이란 경제적 이해를 떠나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산업이며 외교활동의 근간이 된다. 한국 관광을 홍보하려면 현지 주민을 상대로 홍보를 하는데, 현지 주민은 한국의 노래와 춤, 고전무용(古典舞踊)을 좋아하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 부르는 노래와 춤, 가야금 병창은 인기가 대단하다.
상호가 한국을 소개하고자 출국을 할 때는 주로 이명자(李明子) 무용단을 이끌고 나갔으며, 필요에 따라 악단이나 가수, 서예가와 요리 연구가도 동반 출국한다. 가. 일본 관광객 유치행사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삿포로, 센타이,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나코야에 한국관광공사 현지 지사가 있다.
본사에선 이들 지사를 발판으로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한국 관광을 소개하고, 여행을 권장하는 관광객 유치활동을 전개한다.
1984년 12월 4일 밤, 교토 센추리 관광호텔에서 있었던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한 전 주한 일본대사 “우시로쿠 도시오(後宮俊雄)”와 일본 도예가로 한국인의 후예인 제14대 심수관(沈壽官)을 만나 한국 관광정책의 설명, 관광지를 홍보하던 추억을 회상한다. 같은 기간에 상호는 가코시마와 후쿠오카, 오사카에 있는 TV 방송국을 방문하여, 시청자들에게 한국관광지를 소개하며, 일본 사람에게 한국으로 관광을 올 것을 홍보하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 동남아 관광객 유치행사 대만은 국토는 좁으나 여행을 즐기는 국민으로 한국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외국인 관광객이며, 싱가폴은 관광객이 한국으로 들어 오는 숫자는 미미하나, 입국 숫자보다는 싱가폴 자체가 무역, 해운, 항공 등 동서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지정학적 고려에서 관광불 (觀光弗) 가득(稼得)보다는 관광홍보를 중요시한다.
1984년 9월 1일이다. 태국 방콕시에서 있었던 관광객 유치 행사 시에는 태국 왕실의 나이 많은 공주가 참석하고, 태국주재 한국대사 (金佐洙)와 “솜차이” 관광청 장관도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준 일을 잊지 못한다.
하루는 사장실에서 결재가 끝난 후에, 상호가 “나는 왜 부장으로 승진이 안 됩니까, 나와 같은 시기에 과장으로 있던 시림은 모두 부장으로 승진이 되었습니다”라고 항의하자, 사장은 “김 과장은 왜 승진에 연연합니까. 군대생활도 오래했고, 경험도 많아 부장이 아니 라 이사도 늦은 형편인 데, 군대생활을 명예롭게 끝냈으니, 승진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현직을 우수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에 만족 하십시오”라고 한다.
사장의 합리적인 답변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상호는, 그날 이후 승진에 대해서 일체 이야기를 안했더니, 정년퇴직 날짜에 맞추어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시켜 물러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