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국민의 설음

식민지 국민의 설음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식민지 국민의 설음

0 10,401 2006.08.1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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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실업자가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사람 이 종사할 일자리를 독점하니, 한국인은 생활을 유지할 일자리가 없어지고, 농토는 일본의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소유로 넘어가서, 농업은 마비되어 한국인은 빈궁(貧窮)하고, 일자리 잃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전국을 떠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사람이 글을 배워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면, 일본의 식 민지 정책을 반대하고, 독립을 요구한다고 배울 기회를 박탈하고, 우민정치(愚民政治)를 실시하니 한국인은 무식하고,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 는 인간이 동물을 상대하는 태도와 같다.
  학교 잔디밭이나 공원 잔디밭엔, ‘개와 고양이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 을 세워놓고, 그것을 보는 한국 사람은 일본사람이 세운 팻말이라, 한국인을 동물시 하는 글귀도 그러려니 하고 당연시(當然視) 한다. 지각 있는 사람이 일본 정부에 대해 인간다운 대우를 요구하면, 일본정부는 돼먹지 않은 조선사람(不逞 鮮人)이라 해서 특별장부(Black List)에 기재하여 감시를 강화하고, 각 경찰서 와 일선 파출소까지 감시를 강화하라고 명단을 통보한다.
  일본정부가 우민정치를 시행하니, 학교는 부족하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기회 가 주어지지 않아 무식자가 많으며, 못 배운 것이 당연하니 허물이 되지 않는 다. 학교에 가서 신학문을 배우고 눈이 뜨인 사람은, 부락마다 사랑방을 빌려 한문을 배우는 서당을 차리고, 공터에 야학교를 세우고 강습소를 개설하여 한글을 가르치며 청소년의 무식을 없애려 노력한다.

재작년(2004.10.15) 가을 모 생활정보지에 경기도 안산시민(홍석필: 81)이 어 린 시절,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자 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이 가르치는 야학당 제2회 졸업생이고, ‘채’ 선생 덕에 눈이 뜨여서 평생 그 은혜를 잊지 못해 보은의 길을 찾고 있다고 보도하며, 노인은 젊어서 정미소를 경영하여 돈을 많이 모아서 노후에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며, ‘채영신’ 기념관을 지어달라고 안산시에 현금 1억 5천만 원을 기탁하고, 안산시는 ‘채영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다.
작년(2005.9.19) 가을에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하는 나라사랑신문 제5면에, 일 제식민지 시대에 농촌계몽운동가이자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자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인 ‘최용신(1909~1935)’ 선생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상록수공원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연면적 462평방미터 규모로, 내년도 상반기 시 예산과 독지가의 후원금 등 9억원을 들여 건립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보도한다.  
   1930년대 농촌에 심은 묘목이 비와 찬 서리를 맞으며 거목으로 자라, 70여 년이 지나서 꽃을 피운다. 옛날 일본 식민지 시대엔 우민정치를 하면서 한국 어린이의 입학을 허락하기 위해서 선발시험을 치르는데, 한 가지 예를 들면 기차 그림을 그려놓고 연기가 흘러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부느냐?”라고 묻는가 하면, 기관차를 그려놓고 “기차가 어느 쪽으로 달리느냐?” 라고 묻는 선발시험으로, 기차를 보지 못한 어린이에겐 어려운 질문이오, 답변하기 힘든 문제다.

초등학교를 지원하는 어린이는 많은데, 입학을 허락하는 숫자는 적으니 글을 배울 기회를 노치고 탈락하는 어린이가 많다.
나도 초등학교 선발시험에 응시(1937.2)했으나 보기 좋게 낙방한다.  어 머닌 집안 형편이 나를 초등학교는 가르칠 수 있는 형편이라 선발시험에 또 낙방을 염려해서 선발시험 2일 전(1938. 2)에 인심이 후하다고 소문난 한국인 부교장(金東根)을 찾아가서 입학을 애원하여 배려를 약속 받는다.
  
  내가 들어가기 어려운 초등학교를 들어가니(1938. 4), 처음부터 일본말로 수업을 하며, 한국말을 일본어로 통역하느라 저학년 담임선생은 모두가 한국인 선생이다.
체조시간에 상의를 벗고 대오를 지어 뛰는 데, 누군가가 열중에서 작은 목소리 로 “송키테이..., 송키테이”하고 속삭이니 모두가 “송키테이..., 송키테이” 하고 따라서 속삭인다. 말뜻은 몰라도 ‘송키테이’라는 구호는 구보와 관련된 단어로서 일본인 선생이 들으면 체벌을 받는다는 두려운 생각에, 모두가 ‘송키테이’ 하고 큰 소리로 외치지 못한다.
  알고 보니 1936년 8월 9일, 세계 46개국이 참가한 제11회 베를린올림픽경기 대회에서 양정중학교에 다니던 ‘손기정’ 학생이 마라돈 경기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우승을 했는데, 동아일보에서 가슴에 단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이 춘천까지 전해져, ‘송키테이’라는 이름은 한국인 학생이 올림픽경기에서 우승을 해서, 일본 사람이 싫어하는 ‘손기정’이라는 이름의 일본 발음이다.
수업 시간표엔 1주일에 1시간씩 조선어 과목이 들어있어 초등학교 어린이는 언문(諺文)이라고 해서 한글을 배우고 읽었는데, 일본정부는 1941년 봄에 학교 수업시간표에서 조선어 과목을 삭제한다.

  12살에 가장이 된 나는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데, 졸업을 앞두고 등록금이 필요 없고 초등학교 선생 자리가 보장되는 사범학교 응시를 희망했으나 학교 당국으로부터 응시가 불허되고(일본 식민지시대엔 사범학교 응시는 학교장 의 추천이 필요했다), 등록금이 필요한 중학교와 농업학교는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응시를 포기한다.
  한국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은 현지 징용공장이라 하여, 일본 본토의 공장과 동등하게 분류하고, 종업원도 현지에서 채용 했지만 신분은 정부에서 채용한 종업원으로 간주한다.
  현지 징용공장으로 지정된 공장은 인천의 히타치(日立)공장과 조선기계제작소 (대우중공업의 전신), 부평에 있는 조병창(造兵敞)뿐이다. 공장 당국에선 일본으로 끌려갈 젊은이가 한국에서 현지 징용공장 종업원으로 취직되어 가족을 부양 하며 후한 대접을 받고 있어, 공원(工員)으로 취직 하는 데에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어 입사를 제한하니, 공원으로 취직하기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
  공장 직공으로 취직되면 정부에서 취직시킨 종업원으로 분류하고, 정부에선 기술 가진 종업원의 확보 수단으로, 기술자 양성소란 교육기관을 설립해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기술자를 배출한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시험이 끝나니, 인천에 있는 히타치공장 기술자양 성소 직원이 춘천초등학교까지 와서 학생을 모아놓고 하는 말이, “중학교 학생은 공부를 중단하고 근로봉사로 공장에 나가지만, 공장 기술자를 양성하는 양성 공(養成工)은, 나라에서 책을 무료로 나눠주며 기술을 가르치고, 공부를 시켜서 중학생보다 장래가 보장 된다”라고 선전한다.

  양성공이 되면 쌀 배급량도 일본인과 같은 1일 4홉 8작 9재로, 한국의 일반인 이 받는 2홉 3작 8재보다 차별나게 배급하고, 급료도 공부하는 2년간은 학생 신분으로 5원 20전의 수당만 받지만, 양성소를 졸업하면 일반 공원의 반장으로 초임금도 60원으로 일반 공원의 50원보다 높은 액수를 지불하며, 식량의 배급량과 급료가 일반 공장 종업원보다 후하고, 자체 교육기관에서 기술자를 양성 배출하여 필요한 기술자를 확보한다고 생색을 낸다.
  사범학교 진학에 실패한 내 귀엔 현지 징용공장과 기술자 양성공이란 단어 가 솔깃하게 들리며, 등록금을 내고서도 공장에 나가 근로봉사를 할 바에야, 등록금 없이 수당을 받으며,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고 공부를 하는 공장 기술자 양성공이 현실적으로 실리(實利)가 있다고 판단한다.
기술자 양성공은 하루는 교실에서 이론을 배우고, 하루는 공장에 나가 이론을 실천하는 격일제 근무로, 중학생은 학업을 중단했지만 공장 기술자 양성공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중학교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공장 기술자 양성공이 좋다는 양성소 직원의 선전에 현혹 되어, 나는 공장 기술자 양성소로 떠나며 고향(春川)을 등진다.
   고향을 떠나 인천에 온 전국의 어린 학생 100명을 공장 당국은 재학생 50명 과 합쳐서, 막사가 2동 30실 있는 기숙사에 수용하여 학칙(學則)을 적용받는 기숙사 생활을 시킨다.
  히타치공장은 주물(鑄物)공장과 내화(耐火)벽돌공장, 화학약품인 붕사(硼砂)를 생산하는 특수화학공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물공장은 쇳물을 녹여 기관차의 부속품을 만들고, 내화 벽돌공장은 주물공장에서 용광로 벽을 쌓는 내화벽돌을 생산한다.
특수화학공장은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엔 남미(南美)의 ‘칠레’에서 수입하던 자연산 붕사가 전쟁으로 수입길이 막히자, 일본 당국은 붕사의 화학 기호(na2b4 h710h20)가 들어있는 광석을 분리 융합해서 붕사를 생산한다.
  붕사는 확대경의 광도(光度)를 조절하는데 필수불가결의 화학약품이며, 잠수함의 잠망경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약품이라고 해서, 일본정부는 특수화학공장은 일반에겐 공개하지 않는 비밀공장으로 분류한다.

  물자는 귀해서 암시장(暗市場)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쌀 1가마니에 100원, 지카타비(일본사람의 노동화) 1켤레에 100원, 좁쌀포대로 재단한 것과 같은 작업복이 100원을 호가하나, 가격만 형성돼 있을 뿐 실물은 없다.
  그날은 내가 온돌의 난방(煖房)을 책임지는 ‘온돌당번’ 날이다. 기숙사 무연탄 저장고엔 무연탄이 없지만, 방을 따뜻이 하는 데 무연탄이 없다는 말은 이유가 못된다.
평일엔 기숙사에서 공장으로 나가면, 책상 앞에서 화학방정식을 풀고, 프라스 코에 들어있는 붕사 액체에 시약(試藥)인 ‘만닛토’ 2,3방울을 떨어트려 붉은 색으로 변한 액체를 흔들며, 비중계(比重計)를 보고, 일정한 물에 녹아있는 붕사의 함량을 조사하는 데, 그날은 온돌의 난방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하루 종일 온돌방을 어떻게 하면 따뜻이 하나 궁리만 하다가, 무연탄이 산더미같이 쌓인 공 장 저탄장(貯炭場)이 생각난다.

  일과시간에 저탄장에 가서 석탄 한 덩어리를 주어서 철조망 밑으로 갖다 놓 고, 일과가 끝나면 철조망 밖에서 석탄을 가져갈 심산(心算)으로, 일과가 끝날 무렵 하루 종일 궁리한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일과가 끝나고 양성공은 기숙사로 가기 위해 대열을 짓고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수위실 앞을 보무(步武)도 당당히 지나가는 데, 서무과 직원이 수위실에 있다가 지나가는 양성공 대열에서 나를 불러낸다.
서무과 직원은 사무실 창문을 열고 내가 하는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 던 모양이다.
  급히 수위실로 달려와 대오(隊伍)를 짓고 수위실 앞을 지나가는 양성공 대열에서 나를 불러내선, “왜 저탄장에서 석탄을 훔치느냐?”라고 하며,  멱살을 잡고 기숙사까지 끌고 가서 일본인 사감선생에게 인계한다.  
  일본인 사감선생(本宮武一)은 너를 인계 받자마자, “이 OO아, 조선 사람은 할 수 없구나”라고 하며 내 멱살을 잡고 마루바닥에 업어치기로 메다꽂곤 군화를 개조한 실내화로 마구 밟는다.
한참을 밟고 나서도 분이 덜 풀리는 지 나를 잡아 일으키더니 주먹으로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데, 저녁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자니 이가 아파 밥을 씹지 못하겠다.  

  일요일에 공장을 벗어나 시내로 나가려면, 집집마다 담 밑에 손으로 빚은 송 편 같은 무연탄을 말리고 있는 데, 태양열로 건조시킨 뒤에는 취사용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연탄 가루가 날라 온통 세상이 뿌옇다.
  비 오는 날은 더욱 심해서, 여인들이 처음 버선을 신을 땐 오이씨 같이 희고 예쁘게 보이던 버선이, 하루가 지나면 버선이 검게 물들고 빳빳하던 버선목이 주저앉아, 서울이나 인천에 사는 도시인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농촌에 비해 도회지는 검은 빛이 대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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