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tv뉴스를 시청하니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 하며, 고령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이나, 노인이 지출하는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의 10%를 점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고령화 인구에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하다가 내 나이를 따져보니, 1930년생이라 만으로 쳐서 74세이니 늙었어도 한참이나 늙었다.
귓가에선 6.25사변 전에 서울 후암동 삼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대한청년단원’이 목총을 메고 손을 앞뒤로 흔들며 부르는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하는 군가 소리가 쟁쟁하고, 6.25 사변이 발발하자 12월 18일 제2국민병으로 소집되어 남하하는 과정에서 신작로를 걷지 못하고 어렵게 산길을 넘어 날이 저물자 문경 새재(鳥嶺) 밑 초가집 추녀 밑에서 밤을 밝히고, 날이 밝자마자 걷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길이라고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는 길동무를 일으키는 순간, 옆으로 눕던 장면이 생생한데 벌써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면 1평 땅 밑에 누워있는 젊은이가 수 없이 많으며, 문패 달린 비석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초등학교를 나오고 한 자(一尺) 두 자(二尺) 무명(木綿)을 팔면서 Gate란 영어 단어도 못 배우고, 6.25사변을 겪고 월남전에 참가했어도 국립묘지에 편안이 눕지도 못하고 오늘까지 어렵게 살고 있다.
1평 땅 밑에 누워있는 사람에 비하면 꽤나 목숨이 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Gate란 영어 단어를 몰라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두를 놓치고, 노후대책도 없이 쓸쓸이 지나는 데, 그나마 국가에서 먹여주고 병을 치료해주며 차를 태워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평생을 나라 발전에 기여했다고 국가유공자로 대우 하더니, 지금은 통일 방해꾼이라고 괄시를 하니 기가 막히다. 공산주의 국가인 이북에서도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은 영웅시 하고, 무슨 행사 때는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뽐내는 데, 정작 영웅시해야 할 대한민국에선 통일 방해꾼으로 괄시한다.
공산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나 자기 나라에 대한 충성에는 국경이나 주의주장이 필요 없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체제를 전복하려고 북쪽에서 내려온 간첩이 민주화 유공자가 되고, 공산주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장기 복무하는 죄수를 북쪽으로 보내자는 세상이니, 오래 살고 있는 것 이 한스럽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뇌물(賂物)이라는 단어도 없었고, 노후대책(老後對策)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배우지 못한 단어를 후회해본들 소용이 없으며,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을 기대하지 말고 그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