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을 전후해서 육군정보학교에서 근무하던 장교들의 모임인 정우회(情友會)에서 여름 야유회를 부부 동반하여 서산으로 간다고 하기에,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과실을 싸면서 출발을 서두른다.
밖에서는 여름비가 세차게 뿌리는 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30년 만에 그립던 얼굴을 만나는 날에 비가 쏟아진다.
사당동 전철역 근처에서 비를 피하느라 지연되기는 했으나, 오전 8시 35분에 서산을 향해 사당동 주차장을 출발한다.
옛날 정보학교에서 근무하던 장교들의 부부동반 모임이라, 남자들은 자주 만나지만 여자들은 30년 만의 만남이라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는 군인가족이란 말을 들으며 처녀 같던 얼굴들이, 30년의 세월이 흐르니 모두 늙은 할머니가 되어 손자 손녀 자랑으로 화제가 만발하고, 남자들은 질끈 군화 끈을 매고 씩씩하게 움직이던 청년 장교들이, 지금은 모두가 중년의 노신사로 변했다.
덕산 충의사(忠義祠)에 들려 사당에서 윤봉길 의사의 영정도 보고, 산 밑에 세워진 동상도 보며, 생가에 들려 유품도 본다.
덕산은 내 고향이라 충의사는 몇 번을 들려 낯설지는 않다. 관람을 끝내고, 서산 방조제까지 가는 데 포장도로 길가에는 특산물인 담배와 고추, 생강이 많다.
방조제까지 간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 잠시 제방을 거니는 데, 둑에 세워진 설명문 간판에는 마지막 물마기에 폐유조선이 사용됐다는 설명문이 그림을 곁들여 쓰여 있으며, 신문과 TV를 통해서 서산 간척지 조성을 위해서, 마지막 물마기에 폐유조선이 쓰였다는 보도는 접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현장에 와서 설명문을 보고 사실을 확인하니 수긍이 간다.
정주영씨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착상이다. 방조제 둑은 너비가 9m에 길이가 645m라고 한다. 방조제는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하고, 육지는 논으로 변하여 모를 심었는데, 아직 염분(鹽分)이 남아있어 벼는 잘 자라지 못한다.
이곳에서 안면도까지는 24km라고 하는 데, 안면도는 2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서해안에 와 있다.
간간이 낚시하는 사람을 볼 수 있으나, 8월이 지나니 피서하는 계절은 아니다.
귀로에는 서산읍 “갯마을”이라는 식당에서 도시락을 들며, 30 년 전에 군인 가족들이, 친목행사로 포항해수욕장에서 물놀이 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덕산에 들려 섭시 45도에 ‘나토륨’이 들어있다는 유황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수도기게화사단에서 보좌관으로 있던 김호영 씨 부인이 산후풍으로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병세에 차도가 있어 이번 모임에 참석한 것이 한없이 기쁘다.
김주호 씨 부인은 연령에 어울리지 않게 곱게 늙어서 보기에도 아름답다.
오늘은 젊은 청년시대를 신나게 살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며, 옛날 젊은 때를 생각하니 세월이 빨리 가고 인생살이가 덧없이 흘러간다.
사당동에 있는 “놀부”식당에서 전골냄비로 저녁식사를 하고, 늦어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집으로 가기 위해 뿔뿔이 혜여진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음과 같은 시상이 떠오른다.
인생살이
세월아 멈춰라 못다 한 일 너무 많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는 데
현장에서 손을 떼니 친구들 생각이 난다
그립고도 보고 싶은 얼굴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모두들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으련만
화려함도 초라함도 한갓 꿈인 것을
희망으로 한세상 살고 있는 데
이렇게 삶을 마감해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