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 하 초등학교 시절, 일본 관광지 하면 산천경관이 수려하고, 주위환경이 아름다운 산정호수 ‘주젠지코’와 ‘주제젠지코’에서 물이 흘러 넘쳐서 밑으로 흐르며 폭포수가 되는 ‘게콘노 타키’가 있다고 들어서, 언젠가는 ‘주젠지코’에 가서 ‘게콘노타키’를 보는 것이 상호의 꿈이 되었다.
상호가 도쿄 방문을 마치고 ‘닉코’로 가는데, ‘닉코’ 지역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고 한국을 자주 방문하던 ‘스즈키’ 사장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 일본에 온 김에 ‘닉코’ 관광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다.
‘아사쿠사’ 역에서 ‘도부’ 행 열차를 타고 1시간 30분 만에 ‘후치하라’ 역에 내리니, 역에는 ‘스즈키’ 사장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다.
역에서 ‘스즈키’ 사장의 호텔이 있다는 ‘키누카와’까지 그의 승용차로 달린다.
‘닉코’에 와서 보니, ‘주젠지코’와 ‘게콘노타키’에 추가해서 17세기 초(1600)에 천하를 통일하고 죽은 ‘도쿠카와이에야스 (1942-1914)’를 기리고 그의 무덤이 있다는 도쇼쿠(東照宮)에 볼거리가 많으며, ‘주젠지코’와 ‘게콘노타키’, ‘도쇼쿠’를 합해서 ‘닉코’의 3대 관광지라고 한다.
아침 일찍 상호는 ‘스즈키’ 사장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눈이 10cm나 쌓이고, 눈 위엔 발자국 하나 없는 처녀지의 아스팔트 포장길을 달린다.
눈 덮인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스즈키’ 사장의 운전 솜씨도 대단해서, 육중한 몸집을 하고서도 펼쳐지는 풍경에 얽혀있는 전설과 설화를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옛날 에토(江戶)에서 ‘토쇼쿠’ 까지 참뱃길을 단장하기 위해서, 길 양편에 삼나무(杉) 묘목 20만 구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장장 37km에 걸쳐 늙은 삼나무 15000구루가 남아 있다고 한다.
‘도쿠카와’ 바쿠후 (집권세력)의 역대 다이쇼군(집권자)과 다이묘(지방장관)들이, 자기 선조와 초대 집권자가 잠들어 있는 ‘도쇼쿠’ 참배를 위해, 이 도로를 따라 대 행렬 을 짓고 왔다는데, 지금도 왕년의 대 행렬이 민관 합동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그 모습은 엄숙하고도 장관의 극에 달한다고 한다.
‘스즈키’ 사장은 삼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관리사무소 앞 자갈 깔린 광장에 승용차를 세운다. 사무실 안에서 그곳 책임자인 ‘아오 야마’ 상에게 상호를 소개하고, ‘아오야마’ 상은 친구의 소개로 지난 해 서울 새마을운동 본부를 방문했었다며 상호 일행을 반가이 맞아준다.
‘아오야마’ 상은 궁궐의 안내를 위해서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신관 (神官)을 딸려준다. ‘도쇼쿠’의 사원규모는 교토의 ‘니조죠’나 ‘나라’ 의 ‘도타이지’ 사원 규모보다는 작으나, 필요 이상의 공간은 없고, 모든 건물은 적소에 배치돼 있다.
‘도쇼쿠’의 건물과 장식물은 옛날 ‘에토(東京)’문화의 결집된 걸작품들로, 현대 건축문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옛날의 건축문화다.
신관이 안내한 곳은, 그가 입고 있는 순백색 ‘하오리 하카마(일본 전통의 남 자 위아래 옷)와 흰 다피(버선), 나무로 된 굽 높은 ’게타(일본 나막 신)‘와 대조되어 귀기(鬼氣)마저 가미된 엄숙한 분위기다.
회랑(回廊)을 돌아가니, 마구간 미닫이에 3마리 원숭이를 조각한 그림이 나타난다.
3마리 원숭이 중,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부정하고 나쁜 것은 보지 않는 원숭이, 다른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악하고 옳지 않은 말은 듣지 않는 원숭이, 또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막고 험하고 거친 말은 하지 않는 원숭이로 300년 전에 통하던 사회진리가 지금도 통한다는 데 공감이 간다.
회랑을 돌아가니 창고가 나타난다.
창고 안엔 3대의 상여가 있는 데, 신관은 금빛으로 칠한 상여를 가리키며, “이 ‘미코시’는 ‘미나모토노요리토모’와 ‘도요토미히테요시’, ‘도쿠카와이에야스’를 모신 '미코시'입니다”라고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옛날 전국시대의 영웅인 데, 후세 사람들은 신으로 추앙하여 ‘미코시’에 모시고 있으며, ‘미코시'는 일본 사람이 마을이나 지방의 축제 때에, 어깨에 메고 “왔쇼이, 왔쇼이’하고 외치고 다니는 상여 같은 구조물로, 구성원의 단결을 도모하고 가정과 국가의 태평과 무사 안일을 기원하는 구조물이라고 한다.
‘미코시’를 메고 “왔쇼이...,왔쇼이”하고 부락을 돌아다니는 것은, 일본 ‘쓰지마’ 반도에 조선 통신사가 상륙했다는 것을 부락 사람에게 알리고, 일본 사람이 조선의 선진문화를 전수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자축하기 위해 ‘미코시’를 메고 “왔소...,왔소” 하고 부락을 돌아다닌 데서 유래했다고, 한국 학자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풀이한다.
신관은 ‘미코시’를 보관하는 창고를 지나 자갈 깔린 참뱃길을 돌아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 다음 방으로 상호 일행을 안내한다.
‘다타미(집으로 만든 일본의 돗자리)’가 깔린 방안에 들어가서, 무릎 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신관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신관이 종이로 만든 ‘터리개’ 같은 것을 집어 들더니, 상호 일행 머리위에서, “사각 ...,사각”하고 2,3회 좌우로 흔들더니, 무엇인가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상호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신관에게, “터리개 같은 것을 좌우로 흔들며 무엇인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는데,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라고 물으니, 신관은 “여러분의 행복과 가정의 안녕, 국가의 평화를 빌었습니다”라고 답변한다.
신관은 상호 일행을 특별한 방으로 안내한다. 방으로 들어서니 바닥은 일본 특유의 ‘다타미’가 깔려있고, 천정엔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림 중앙의 30cm 평방의 네모진 그림엔 ‘도쿠 카와’ 가의 문장인 도라지꽃이 조각되어 있다.
신관이 “이 방은 역대 ‘다이쇼쿵’이 본당에 모신 ‘이에야스’ 공을 참배하기 전에 들어와서 잠시 쉬는 방으로, 도쿠카와 가의 쇼궁 (將軍) 만이 들어와서 앉을 수 있는 방으로, 일반 다이묘(地方長官) 가 앉는 경우에는 천정의 도라지꽃 문장은 가리고 앉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긴상, 당신은 다이쇼쿵(大將軍) 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오”라고 하며 상호를 보고 농담을 한다.
상호 일행은 본당의 관람을 마치고 나와 건물을 돌아가니, 사원 (寺院)과 ‘이에야스’ 공의 묘지를 구분하는 회랑이 나타난다.
회랑 대문 위에는 고양이 조각상이 놓여있는 데, 고양이는 눈을 감았으나 등을 세우고 앞발을 모으며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자세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고 있으며, 묘지 근처엔 생쥐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말라는 뜻이란다.
이것이 일본에서 유명한 ‘도쇼쿠(東照宮)의 졸고 있는 고양이(’이네무리 네코-居眠り猫)다. 길 건너 회랑 판자 위엔 잉어가 놀고 있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데, 동물 세계에도 평화가 찾아와서 배가 고프면 물고기도 잡아먹는 고양이도 배가 부르니, 잉어의 존재는 관심이 없으며, 잉어도 굳이 고양이의 존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그림이라고 한다.
졸고 있는 고양이 조각상과 헤엄치는 잉어의 조각그림, 전국시대 (戰國時代) 3인의 영웅을 모시고 있는 ‘미코시’와 하지 않는다는 3마리 원숭이 조각그림을 떠올리며 ‘도쇼쿠’의 관람을 마치니 오후 5시가 지나서, 다음 목적지인 ‘혹카이토’로 가기 위해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