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등학교때의 일입니다.
월남전 참전용사이셨던 선생님댁에서 월남전 당시의 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은 베트공의 잘린 팔다리를 들고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당시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 이러한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막연한 생각들...
필자가 비록 전쟁터는 아니지만 군대에서 부상당하여 상이군인이 된 지금 ...
그분들의 당시의 고통과 희생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 월남참전용사들의 전쟁당시 민간인 학살 \" \" 6.25전쟁당시 군인,경찰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 \" 들의 기사를 접했을때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학살이 없었다고 부인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모든국민들이 참전용사들의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사회적풍토도 조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일로서 모든 참전용사들까지 매도하는 일이 생기는일은 없어야할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월남전영화 그리고 \"하얀전쟁\" 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 전쟁당시 우리들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산주의를 섬멸하기 위해 참전하였지만 결국은 이 참혹한 전쟁에 살아남기 위해 내자신을 위해 싸운것이다. \"
전쟁이 얼마나 참혹함과 고통만을 안겨주는 일이며 순간 대의명분도 사라지는 일이란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먼저 월남전의 시작과 한국군 참전과정,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는우려 때문에 (남)베트남에 미정규군을 파병함으로서 군사적 원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사건이 발생하여 Johson정부는 미군을 직접 전투에 참가시키게 되였고 1965년 (북)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전쟁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25개국에 참전 요청을 했고 그 중 7개국이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1964.7.18 비전투부대인 의료지원단과 태권도 교관단 파병을 시작으로 1965년10월에는 전투부대인 청룡(해병대)부대 와 맹호사단을 1966년에 백마사단과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 지원부대를 파병하였으며 베트남에서 철수하던 1973.3.23까지 8년 8개월간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여 5,000여명의 전사자와 16,000여명의 전상자 50,000여명의 고엽제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64년 5월 9일 미국정부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베트남전 파병을 요청했고 뒤이어 1964년 7월 15일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 요청이 있어 대한민국 국회는 1964.7.31 제44회 임시국회를 열어 베트남참전안을 가결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근대역사 상 처음으로 해외파병이 시작되였습니다.
우리국군이 참전하게된 동기와 명분을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는 (남)베트남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고 자유수호하려는 공동방위체로서의 신의룰 준수함은 물론 우리나라가 1950년 6.25전쟁 당시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참전해 준 16개국에 대한 보답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위향상에도 일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경제상태는 세계 최하위 빈곤국가로서 기업의 해외진출은 생각지도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참전 기간 중 약 10억불 이란 당시로는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정부는 개발도상국 대열에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한편 군사적으로는 방위산업 육성과 장비근대화를 이루었고 우리군의 국제적 지위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전투 경험자를 배출할 수 있었고, 독자적인 전술개발과 병법, 전술을 습득하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3월 4일 발표되었던 Brown각서에서 첫째로
군사원조로서는
1. 한국군의 현대화 장비지급
2. 참전 한국군의 일체의 경비부담
3. 해외참전 전투 수당지급
경제적으로는
1. 베트남에 건설사업 참여
2. 수출장려 및 기술원조 증가
3. 경제개발 차관 제공
4. 경부고속도로 건설지원
등을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종전 후 베트남전에서 철수한 국내의 각 건설업체들은 베트남에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때마침 석유파동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중동지역에 진출함으로서 오늘의 경제기반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 대한미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홈에서 발췌 - \"
32만 베트남참전 용사들은 국가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세계평화의 수호군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8년동안의 월남참전기간동안의 자료를 수집하는동안 필자는 놀라운 사실들, 비화, 당시와 현재까지 한국정부의 비도덕적 행태, 정치인들 행태등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이에 필자는 몇가지 사실과 함께 정부와 정치인들께 촉구,주장하며 마무리할까합니다.
( 아래글은 필자본인의 생각이며 반론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1. 월남전 당시 국가가 착복한 참전용사 봉급을 즉시 반환하길 촉구합니다.
정부관계자는 월남전 당시 브라운 각서에 의하면 참전 시 전투 수당까지 합쳐서 병사 1인당 월 200달러를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우리 정부에서 병사들에게 지급한 돈은 1인당 월 30∼40달러에 불과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금액은 우리 정부에서 국가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쓰여졌습니다. 이젠 그돈의 일부를 영웅들에게 돌려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어떤분이 소송을 하면서 그돈이 현재돈으로 환산해서 5조원정도 될거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고엽제 후유증 유공자들에 대한 보상을 현실화 시키고 의료지원을 확대하고 2세 후유증환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주시길 촉구합니다.